조선일보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이란 공간에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고인의 명복을 비는 소시민의 뜻입니다.
오늘 조선일보 모 지국에 전화를 걸어 “오늘 날짜로 조선일보를 그만 보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부터는 신문 넣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내게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93년 5월 결혼하고 청담동 신혼집에서 부터이니 16년이란 시간이네요. 참 그 중에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하는 날 짐을 들어 도와준 중앙일보 직원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3년여 기간 동안은 중앙일보를 보았기에 그것을 빼면 정확히는 13년. 친근한 것과의 이별이란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지국의 책임자분은 이유가 뭐냐고 묻더군요. 내 양심에 반해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하다는 그 분 말씀에 어제 날짜 그러니까 2009년 5월 29일자 신문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꼭 그날의 신문내용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나 봅니다. 그 날짜는 계기가 된 것뿐 입니다.
문제의 2009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입니다.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일째 국민장이 있는 날입니다. 그날 아침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고 베란다 의자에 앉았습니다. 담배 때문에 거실에서 신문을 보지 못하는 요즘 가장들의 전형이네요. 해가 길어진 탓에 베란다는 아침볕이 가득했고 햇살가득 담은 신문의 메인을 보았습니다.
“어? 오늘이 국민장이라던데... 신문이 다른 날짜인가?” “대북감시 ‘워치콘2’로 격상” 이란 헤드라인과 해군 2함대 경비정들의 사진이 보입니다. 우측상단의 날짜를 보니 분명 2009년 5월 29일 금요일 이란 글자가 보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아랫면을 폈습니다.
우측 하단 맨 아래 ‘오늘 노무현 전대통령 국민장’ 이란 작은 헤드라인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날짜 1면 광고에는 30년전통의역사 진달래추모공원 국망산자락 음택명당! 이란 광고가 보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의 첫 감정은 사실 화가 치밀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그 알량한 자존심에 하는 짓이라곤” “그깐 일로 죽다니 저런 심약한 사람이 대통령직을 수행했단 말인가?” 하는 감정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흥분이 가라앉자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 또한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나 봅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책입니다. 그 자책은 허탈감과 자괴감마저 들게 했습니다.
그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죽을을 각오했을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는 굴원의 어부사를 떠 올리며 내 자신을 위로해 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본연의 마음은 모든 생명체의 주검 앞에 숙연해집니다. 로드킬로 죽게 된 주인 잃은 개나 야생동물을 보아도 안타까워 지는 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심성입니다. 하물며 7년 전 대한민국의 성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이름을 대면해야 했으며 그는 또한 5년의 짧지 않은 시간 속에 대한민국을 상징했으며 우리에게 일상이었습니다.
사람들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각각일 것입니다. 어떤 평가가 정당한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며 현재의 국민장이란 국가의 대사 앞에는 공과를 꺼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조선일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제의 신문 1면을 그렇게 장식했나 봅니다. 국민장보다 앞서 ‘워치콘 2’ ‘북한핵 FTA ... 오바마의 선택은?
내가 1면에 광고를 없애고 “시일야 방성대곡”이란 헤드라인을 기대했을까요? 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들이 자부심으로 여기는 대기업중 하나가 국민장을 애도하는 광고를 내기를 기대했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이면 공감할 그의 유언대로 “작은 비석하나...” 의 소박한 메인 헤드라인이었으면 족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조선일보이니까요. 독자가 이해하는 신문의 관점을 이해하니까요. 하지만 1면 3단 초라한 구석이라니요. 30년전통의역사 진달래추모... 라니요? (개인적으로 그 묘지회사와는 어떤 이해관계도 감정도 없음을 밝힙니다)
그의 주검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민장 관련기사가 A8면 10면이라길래 왜? 연달아 양면으로 편집하지 않았지? 그리고 2.3면이 아니고 한참 뒤인 8, 10? 하는 생각에 그 면을 펴보니 양면 70%의 렉서스 광고와 한국남동발전(주)라는 회사와 제품의 광고 속에 헤드라인도 없는 기사 내용이 보입니다.
사실 여기서 나는 화가 났다기 보다는 어이없음의 실소를 내게했습니다. 아침 6시에 베란다 의자에서 담배도 물지 않은 나를 '허~ ' 하고 웃게 했습니다.
A10쪽을 펼치니 또한 70%의 광고 속에 30%의 기사내용이 있습니다. 이날 조선일보 총 발생면수는 얼마일가요? A28, B12, D8, E8 총 56면이나 되네요.
언젠가 한참 조중동 시비가 심할 때 소설을 쓰는 한 친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조선일보 장기구독자 = 애독자라는 게 못 마땅한가 보더군요. 나는 조선일보의 장점을 설명했습니다. 신문의 레이아웃 가독성 편집능력.. 신문이 정치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섹션의 특화와 각 분야별 심층기사는 내용이 참 좋다는 요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나를 규정하려는 면 중에 신문과 별개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네가 강남사니 그래서 조선일보냐?”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아가 나 “너는 왜 신간 나올 때 조선일보가 지면의 절반을 할애해서 특집으로 실어주었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인터뷰가 오더라도 받지 않겠다고 지금 선언할 수 있냐고 했습니다. 우리는 조선일보가 갖는 매체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지지했던 정권이 들어 섰으니 그의 주검쯤은 이쯤 정도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가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것인가요? 그리스신화의 이카루스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독자가 주는 깃털과 기득권이 주는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떠 오릅니다. 그들의 욕망은 어디까지 날아 오를 수 있을가요?
어제 신문을 끊기로 맘을 먹고 나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왜 신문 3개사와 저렇게 대립각을 세웠을가? 당시 내 시각에서는 그것은 지나치고 국정의 수반으로서 또한 권력의 중심에선 사람의 태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깟 신문사에 왜 그리 연연하는지..
아마 그는 나와 같은 소시민이 아니라 국민과 늘 마주해야하는 정치인이었기에 국민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기에 그랬을가요? 아마도 국정의 뜻이 왜곡되어 전달 되는 것은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회 어떤계층을 대변하고 그들의 뜻이 자신의 정치 이념과 위배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또 다른 권력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겠죠.
신문 3개사의 구독자가 모두 어떤 계층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기득권의 망상과 보수적 가치관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도 비슷한 범주에 들지 않을가 생각해봅니다. 또한 그 동안의 독자로서 그들을 보면 어떤 내색을 결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민족신문이며 가장 많은 유료독자을 보유한 신문사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에 대한 무시, 깔봄, 어떤 주제를 얘기하면 말의 토막, 말씨를 빌어 그 주제를 호도하고, 사실의 은폐 또는 축소...무관심 등등
어쩌면 나 또한 그런 것들을 즐기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이제야 반성해봅니다.
나는 더 이상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지불식으로 작은 이익에 아퍼서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번의 영결식 당일자 신문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의 주검마저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으렵니다.
사회적 타살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나는 일반적인 자살의 유형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언젠가 읽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의 자살론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자살이란 없다. 사회적 타살만이 있다는 것이 글의 요지입니다.
나는 TV화면에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절규하는 어떤 시민의 입장은 아닙니다. 내 자신이 또다시 무지불식으로 아니면 알면서 그들과 함께 그의 몸을 이른 아침 봉화산으로 오르게 했으며 부엉이 바위라는 벼랑앞에 서게 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나는 그 벼랑위에 선 한 사람의 등을 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살아남은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영전에 조선일보 사절이라는 참회의 마음을 바칩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의 양심에 기인한 반성이며 염치이기도 합니다.
삼가 고인을 애도하며 명복을 빕니다.
남한산하 서벌도리
원본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67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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